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짱구와 동래읍성 한바퀴

짱구와 동래읍성 한바퀴

 

오늘은 점심을 먹고 짱구와 함께 동래읍성으로 산책갔다.
동래문화회관 주차장에 주차(10분에 100원)을 하고
동래읍성 북문을 거쳐 북장대를 지나 부산3.1독립운동기념탑까지 갔다가
되돌아와서 다시 북문을 거쳐 서장대로 갔다가 주차장으로 돌아왔다.

 

 

전체거리가 겨우 2.45키로에 불과했지만, 뚱땡이 짱구를 데리고 쉬는 시간이 더 많은 산책을 하였다.
2시간 산책하면서 걸은시간이 겨우 33분이니 '10분 걷고 30분 쉬고'를 반복한 셈이된다.
실은 동래읍성을 따라 만발한 매화나무를 만날 때 마다 '동박새'라도 만날까 하여
매화나무 아래서 기다린 시간이 모두 한시간이 넘었으니
산책이라기 보다는 동박새를 볼까하여 잠복을 하였다는 표현이 맞겠다. 결국 동박새는 보지 못했다.

 

 

 

 

 

 

 

 

 

동래읍성(東萊邑城)은 임진왜란 때 동래부사 송상현이 이끄는 조선군과 백성들이 항복을 거부하고 장렬히 전사한 곳으로
마안산과 동래 시가지를 연결해서 쌓은 읍성으로 고려 말에서 조선 초에 만들어진 것으로 추정된다.
《고려사》에 의하면, 왜구의 침입 때문에 조정에서는 동래에 축성하였는데,
이때 이 성은 석축으로서 둘레가 3,090척(약900m), 높이 13척(약 4m)으로 우물이 6개나 있었다 한다.


고려 현종 12년(1021년)에 동래읍성을 수리했다는 것과
우왕 13년(1387년)에 왜구의 침입을 막기 위해 동래성을 대대적으로 증축했다는 기록이 있다.
임진왜란 이후 방치되었던 것을 영조 7년(1731년)에 증축했고,
일제강점기를 거치면서 대부분 철거되었으나 다시 복원작업을 거쳐 현재에 이르고 있다.

 

 

`전사이 가도난(戰死易 假道難, 싸워서 죽기는 쉬우나 길을 빌려주기는 어렵다)`이란 말을 남기고
전투 중 순국한 송상현 동래부사를 기리는 `충렬사`와 함께 둘러보면 한층 더 의미가 있을 듯 하다.

 

 

원래 동래읍성에는 동문, 서문, 남문, 북문, 인생문(人生門) 및 암문(비밀문)이 있고 각 문에는 문루가 있었는데,
동문에는 지희루(志喜樓), 서문에는 심성루(心成樓), 남문에는 무우루(無憂樓), 암문에는 은일루(隱一樓)가 있었다.
중요한 문루였던 남문에는 익성(翼城)을 두고, 문은 앞의 세병문(洗兵門)과 뒤의 주조문(朱鳥門)이 있는 이중구조로 되어 있었다.
서문․동문․북문에는 성문 보호를 위해 옹성을 부설하였고, 장대, 망루 및 15개소의 보루를 갖추고 있었다.


근래인 1979년부터 보수에 착수하여 현재까지 성곽, 북문, 옹성, 동당대, 서장대, 여장 등을 복원하였다.

 

[동래읍성 북문]

 

동래읍성 30년 넘게 지속적으로 복원화 사업을 하면서 '동래사적공원'의 중심지가 되는 북문이다.
북문은 동래성의 6개 대문 가운데, 인생문과 함께 복원된 2개 성문 중 한 곳이다.
특히 북문 주변으로는 옛 동래읍성의 성곽이 복원이 잘되어 있어 그 풍경도 아름답다.


서장대에서 북장대쪽으로 성곽을 따라 걸어가면


 

 

정면에 보이는 것이 북문이고 성문 왼쪽 앞에 옹성이 만들어져 있다.
그리고 앞에 보이는 산의 꼭대기에 북장대가 서 있다.


북문은 동래성의 동서남북문 중에 유일하게 복원된 문이다.
원래 동문, 서문, 남문은 모두 평지에 있어서, 이미 도심 한  복판이 되어 복원할 곳이 마땅치 않은 반면에,
북문은 마안산의 고개를 넘는 이 곳에 위치해 있어서, 복원 후 '동래사적공원'의 중심지역이 되었다.

 

 

동래읍성의 북문은 특이하게 앞은 홍예식이고 뒷면은 사각형인 평거식으로 되어있다.
북문과 옹성의 모습으로 동래읍성의 경우 옹성이 특이하다.

보통 옹성의 경우 문루를 중심으로 대략 150~160도 정도 연결이 되는데
동래읍성의 경우는 이상하게 100~110도 정도 되게 옹성이 조성이 되어있다.

 

 

옹성이 작아서 성문을 지키기가 용이한 것이 아닐텐데 유달리 옹성이 좁다.

동래읍성 북문의 옹성의 경우에는 굽는 각도가 작아서 좀 덜 돌아도 되는데

다른 곳의 읍성을 보면 우회를 많이 해야하는 경우가 있다

 

 

북문에서 서장대 방향을 바라본 성곽의 축성모습도 서측으로 산의 능선을 따라 자연스럽게 축성되었음을 알 수 있다.
래읍성 북문의 옹성으로 높이는 4미터 정도 될것 같고 여장까지 합치면 5미터 정도 돼 보인다.


 

 

쉼터에 앉아서 '동래부사 한배하의 젓가락 설화'를 읽어보는 것도 재미있다.
부산에는 전해오는 설화가 많다.
목민관에 얽힌 미담으로 〈유심(柳心)의 전생모〉·〈한부사(韓府使)의 젓가락〉·〈동래의 관항묘〉·〈옥서계의 망령〉 등이 있으며,
서민의 생활설화로 〈의적 정봉서〉·〈박권농의 양자〉·〈만덕고개와 빼빼영감〉 등이 전해온다.
고찰의 유래설화로 〈범어사의 창사유래〉와 〈범어사의 매학동자〉·〈마하사의 16나한〉·〈선암사의 꿈〉 등이 있고,
샘과 굴에 관한 것으로 〈동래온천의 영험〉·〈냉정우물〉·〈새미산베틀굴〉 등이 있으며,
풍수설화로 〈정묘의 명당〉·〈주전자섬의 금기〉·〈삼성대의 김장군설화〉 등이 있다.


 

 

"동래부사 유심에 얽힌 전생모자 설화"도 찬찬히 읽어보면 동래가 옛날에도 복잡다난(?)한 고을이구나 싶다.

 

 

산책로에 깔린 설화와 예날이야기를 읽다가 올라와도 북장대까지는 금새 올라온다.
동래읍성은 평지와 산을 자연스럽게 연결하여 만든 평산성으로

동장대(東將臺), 서장대(西將臺). 북장대(北將臺)를 임진왜란 이후 만들어 놓았다.
북장대는 1737년(영조13년) 증산(甑山) 위에 세워 졌다가 20년 후 이곳으로 옮겨온 것으로 추정되고
이후 언제인가 장대는 없어지고, 마안산 꼭대기가 이백년이 넘는 세월동안 비어있었는데 1999년에 복원 되었다.
북장대는 성내 북쪽 제일 높은 곳에 있어서 성 내외의군대를 쉽게 지휘할 수 있었을 것으로 생각된다.

 

 

지금은 북장대가 있는 자리에 시민들의 편의를 위해 전망데크를 설치되어 있어 멋진 조망을 제공한다.
동래 일원은 물론이고, 멀리 광안대교와 장산부터 금정산까지, 그리고 해마다 시민들의 해맞이 장소로도 인기를 모으고 있다.


북장대에서 건너 보이는, 동래읍성의 동쪽을 이루고 있는 망월산 꼭대기에 있는 동장대(東將臺)
1387년 (고려 우왕13년)에 박위가 수측(修築) 하였다.

 

 

이렇게, 부산시 기념물 제5호로 임진왜란 초기 최대 격전지인 동래읍성은
오랜 세월이 지나는 동안 훼손됐어 있던 것을 1979년부터 "동래읍성 정비사업"을 통해
최근 복천동 동래읍성 북문-서장대 일대 여장(女墻) 75.5여m와 치성(雉城) 1개소의 보수를 끝내
2020년까지 복원을 끝낼 성벽 1962m 중 46%에 달하는 901m에 여장과 치성이 복원됐다고 한다.


 

 

여장은 성벽 위에 설치되는 낮은 담장으로 이곳에 군사들이 몸을 숨기고 적을 감시하거나 공격할 수 있는 구조물이며,
치성은 성벽으로부터 돌출시켜 전방과 좌우 방향에서 접근하는 적과 성벽에 붙은 적을 방어하기 위한 시설이다.


 

 

동래 복천동 고분군 [東萊福泉洞古墳群]은 복산동(福山洞) 북쪽 대포산 구릉에 조성된 고분군으로
구릉의 원래 이름을 따서 학소대(鶴巢臺)고분군이라고도 한다.
1981년 6월 9일 사적 제273호로 지정된 가야시대 고분 100여 기가 발굴되었다.


 

 

북장대를 넘어가면 '부산3.1독립운동기념탑'이 웅장하게 버티고 있다.
부산시에서 전개된 3.1운동을 기념하고 그 정신을 후대에 계승하며

민족정신의 산 교육장으로 활용하기 위하여 1996년 3월 1일 건립한 탑이다.


 

 

 

 

 

21m의 높이로 솟아있는 상징탑은 창조하는 미래를 표현하고 있으며,
내부 조형탑은 선열들의 독립운동정신을, 천장의 8괘마당은 결집하는 민족정기를 표현하고 있다.
기념탑에는 부산3.1독립운동기념탑 건립 취지문과,

부산 3.1독립운동 약사,기미독립운동 약사, 기미독립선언서의 공약삼장이 새겨져 있다.

 

 

이번에는 마안산을 찾는 사람들이 특히 기억을 해 둘만한 곳이다.
알고 걸어가면 큰 횡재를 한 기분이 들 것이다. 북문과 북장대 사이에 있는 계단이 '백세의 계단'이다.

 

 

'백세의 계단'은 정확한 유래는 알 수 없으나
예로부터 '이 계단을 밟고 가면 백 살까지 무병장수하며 건강하게 살 수 있다.'는 뜻에서 지어진 이름인 듯 한다.
원래는 100개의 나무계단이었는데 오랜 세월이 흘러 망가지고 2001년도에 249개 돌계단으로 새롭게 정비되었다.
웰빙시대를 맞아 건강의 중요성이 더욱더 부각되어 '건강 미인'이 '최고의 미인'으로 여겨지고 있으므로
'백세의 계단'의 유래를 생각하며 오늘도 이 계단을 부지런히 걸어가 보자.


 

 

부산 동래읍성에 동래 출신의 조선시대 대과학자 장영실(蔣英實.1400∼1450년)의 사상과 업적을 기리는

'장영실 과학동산'이 조성돼 있다.
이곳에는 장영실이 만든 천문기기인 혼천의를 비롯, 천상열차분야지도, 앙부일구(해시계), 측우기 등

조선시대 각종 천문기기 복원품 18종 19점이 전시되고 있다.
전시 복원품들은 전문가의 자문을 받아 최대한 실물에 가깝게 제작됐다.

 

 

 

 

북문에서 서쪽 산능선을 넘어가면 서장대가 버티고 있다.

 

 

정식으로 동래읍성을 걷는다면, 충렬사부터 시작하여
군관청, 동장대. 인생문. 3.1기념탑. 북장대. 북문. 서장대로
발길을 옮겨야 제대로 된 구경(?)을 할 수 있다.
충렬사에서 군관청으로 오르는 길은 '산불조심'으로 매년 5월말까지 출입이 통제된다.

 

 

짱구를 데리고 하는 산책은 4키로가 넘어면 곤란하다.
조금만 피곤하면 자꾸 안아달라고 난리를 친다.

 

 

 

 

 

 

 

한참을 숲속에 앉았다가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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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 :
문마담/한창훈
제목 :
짱구와 동래읍성 한바퀴
조회 수 :
8249
추천 수 :
5 / 0
등록일 :
2011.03.19.02:53:41

profile
2011.03.19
09:31:28
와우~ 고생하신 작품, 정성어린 작품, 즐겁게 감상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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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03.19
13:17:38
이야~ 깔끔한 작품, 한참을 바라 봅니다. 설레이는 작품, 찬사를 보냅니다.
profile
2011.03.19
16:40:36
쉬하는 강아지 참 귀엽습니다
유유자적한 재미난 이야기 즐겁게 감상하고 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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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03.25
23:03:36
완전~ 남다른 시선, 감탄 할 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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