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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의 길'을 걷다.


'대통령의 길'을 걷다.

 

지하철 동래역 2번 출구의 오전 11시 풍경.
열시 오십분까지 집결하고 열한시에 정확하게 출발한다고 공지를 하였지만,

열한시의 풍경은 담배물고 서성이는 등 어중간한 풍경이 연출된다.
하지만, 조금 늦은(?) 회원의 지각은 오랫만의 반가움속에 이내 가볍게 녹아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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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하마을은 몇달 만에 온 것 같다.
노무현대통령님의 사저 넘어, 부엉이 바위도 훌쩍 넘어, 멀리 보이는 봉화산 꼭대기가 '벌거숭이'가 되어 관음성상의 모습이 환하다.
매번 불이나서 정상부근은 시커먼 풍경을 보여줬는데 이번에 사~악 정리한 모양이다. 잘했다.

김해 봉하 마을은 주변 산 아래 평지에 소박한 시골 살림집들과 논길, 밭길, 숲길, 습지 길 등을 모두 만날 수 있다.
대통령사저, 주차시설, 관광안내센터, 매점, 원형그대로 복원한 대통령생가 등 몇 년 새 많은 변화를 보이고 있다.

 

 

봉하마을은 행정구역상으로 경남 김해시 진영읍 본산리이다. 이젠 완전히 관광지로 변모한 마을이라 할 수 있다.
마을은 진영읍내에서 동쪽으로 4.5km 떨어진 봉화산(해발 140m) 아래에 있다.
마을 이름을 놓고 '봉하마을'이라고 하는 사람도 있는데,

'봉화산(烽火山' 봉수대 아래에 있는 마을이라 하여 붙여진 이름이 '봉하(峰下)마을'이다.
즉, 봉화산 봉우리 아래에 있는 마을이다.

노대통령은 봉하마을에서 태어나, 마을 이 집 저 집으로 이사를 다니면서 꽤 오랜 기간을 살았다. 고 한다.
유년시절을 이곳에서 자랐고 소년시절엔 마을에서 진영읍내에 있는 초등학교-중학교까지 한 시간 남짓을 걸어서 다년다. 고 한다.
부산에 나가 공부한 고등학교 시절과 군 복무기간을 제외하면, 신혼생활과 제대 후 고시공부도 마을에서 했다. 고 한다.

부인 권양숙 여사와도 이 마을에서 만나 사랑을 키웠으며,
권양숙 여사는 이 마을에서 태어나지는 않았지만 어릴 때 이곳으로 이사와 대통령과 가연이 맺어졌다. 고 한다.

 

 

노무현대통령의 묘역에는 무려 '일만오천개가 넘는' 박석이 깔려있다.
묘역에 올 때 마다, 그 많은 박석들중에서 하나(?)를 찾아 볼려고 노력을 하였지만 이제는 포기를 하였다.

 

이 장소는 국가보존묘지 노무현 대통령의 묘역이다.
온갖 정치적 역정과 유난한 삶을 마친 그였기에, 그를 사랑하고 그리워하는 많은 이들이 찾게 될 장소임에 틀림없다.
그러나 그에 대한 애증과 이해로만 이 장소가 존재하지 않기를 간절히 바란다.
더욱이 어느 정파나 이념의 포로가 되는 장소로만 머문다면 이곳은 욕되고 욕되다.


이 장소는,
우리가 어떤 위치에 있었든 같은 시대 속에서 나의 존재가 다른 이들의 풍경의 일부분이 되었음을,
그래서 같은 공동체를 만들었음을 기억하는 장소가 되기를 바란다.

그래서 모두가 보편적 가치를 구하는 곳이며, 결국 우리 자신의 성찰을 구하는 장소로, 성찰적 풍경meta-landscape으로 만들어졌다.

누구든지 자기 존재의 의미에 대해 묻고자 할 때,
그리고 그로 인해 고독하고 적막할 때 여기를 찾아 월대 위에 서서 위안 받을 수 있으면 좋겠다.
그리함으로 이 장소는 노무현 대통령의 묘역이라는 한계를 넘어, 우리 모두를 위한 장소가 된다.
다시 말하면 이 장소는 스스로를 추방한 모두를 위한 풍경이며, 그렇게 우리의 선한 기억에 오래 머물기를 소망한다. (승효상. '노무현의 무덤' 中)

 

 

 

오늘의 일정은 '대통령의 길'을 걷는 것이다.
‘대통령의 길’코스는 노대통령님 묘역에서 출발해 봉화산 주요 길을 따라 올라갔다
본산배수장 방향으로 내려온 뒤.
둑길, 생태연못을 거쳐 노무현 대통령 추모의 집에 도착하는 코스로 구성되어있다. (길이 5.3km, 2시간 30분소요).

봉화산은 옛날 봉화  불을 올리던 봉수대가 있었던 곳이라 ‘봉화산’이란 이름을 붙였다.
해발 140m에 불과한 낮은 산인데도 주변 40~50리가 모두 평지라 사자바위에 올라서 보면 꽤 높아

주변의 아름다운 풍광을 볼 수 있어 작지만 큰 산이라 한다.

 

 봉화산 마애불은 나무울타리 너머에 비스듬히 누운 자세로 끼어 있는 상태지만 보존상태는 좋은 편이다.
1979년 5월 2일 경남유형문화재 제40호로 지정되었다.
마애불의 수인(手印)은 잘 알아볼 수 없고 통견(通肩)의 법의는 가슴 앞에 U자형의 옷주름이 있다.
결가부좌한 다리부분의 옷주름은 선명하지도 않고 바위에 가려 알아보기 힘들다.

양각과 음각으로 새겨져 있으나 광배와 대좌의 표현이 불분명하다.
고려시대의 여래상으로 추정하고 있으며 높이 2.48m, 무릎높이 1.7m이다.
광배는 없으나 균형 잡힌 콧등과 조그마한 입, 어깨까지 늘어진 커다란 귀 등이 세련된 조형미를 보이고 있다.


'한국의 전설'이란 기록을 보면 당나라 황후의 꿈에 한 청년이 자주 나타나서 괴롭힘으로
신승의 힘으로 바위틈에 넣어서 김해 땅 봉화산의 석불로 만들었다고 하는 전설이 있어 흥미를 더하고 있다.

 

마애불 아래에 바위 사이로 석굴이 있다.
입구로 들어가 오른쪽으로 꺽어 들어가면 웬만한 방 한칸 넓이의 법당이 있다.
노 대통령이 고시공부를 했다는 이 석굴에는 불상과 노무현대통령의 영정이 모셔져 있다.
대통령 당선 후 이 토굴이 TV에 방영되자 전국의 많은 사람들이 기(氣)를 받기 위해 몰려들었다. 고 한다.


토굴 옆에는 물줄기는 가늘지만 4단쯤 돼 보이는 폭포가 있다.
이 정도 높이의 산에 물이 흘러내리는 것 또한 흔한 광경은 아니다.

 

 

 

조금 오르다 갈림길 왼쪽으로 가면 부엉이 바위 쪽으로 오르게 된다.

부엉이 바위는 출입금지 되어있고 의경들이 혹시라도 발생할 사고에 대비하여 근무중이다.
얼마 전에도 50대가 부엉이 바위에서 뛰어내려 자살을 했다는 뉴스를 보았다.
늦었지만 지금이라도 이렇게 의경들이 근무하게 된 것은 다행스럽다.

옛날부터 수리부엉이가 많이 살았다고 해서 부엉이 바위라고 불리는 큰 바위다.
지금도 가끔 부엉이가 슬프게 울고 있는 곳이다.

 

함께 걸으면서 가장 즐거운 시간은 역시 먹는 시간이다.

정토원 뒤의 산길에 마련된 쉼터에는 차양아래 테이블과 의자등이 방문객을 위해 무료로 제공되고 있다.
봉하마을에서 구입한 '봉하 쌀막걸리'와 김밥. 초밥에 맨밥에 치즈까지 다양한 점심메뉴에 모두 즐겁다.

 

 

봉화산(烽火山) 정토원(淨土園)은 전각이 수광전(壽光殿) 하나밖에 없는 아주 작은 절이지만
고 노무현 대통령의 서거로 인해 유명해진 절이다.

1920년 '자암사'라는 이름으로 사찰이 세워지고, 1953년 '화일사'란 이름으로 바뀌었다가,
1958년 선진규의 농촌계몽운동의 일환으로 인근의 '신용사'를 병합하여 '봉화사'로 이름을 바꿈.
1975년 화재로 법당과 요사체 전소됨. 1984년 조립식 건물로 법당과 청소년회관으로 사용하면서 '봉화산 정토원'으로 개칭.
1992년 현재의 법당과 회관을 완공.

 

 

봉화산을 오르는 길목에 허접스런 석상이 세워져 있다. 추정컨데 사명대사의 석상이 아닌가 싶다.

정토원의 기록에는 사명대사 상이 1967년 정토원 선진규에 의해 세워 졌다고 되어있다.

 

 

사자바위 위에는 ‘봉수대’라고 적힌 작은 푯말이 있다.
봉화를 올리던 곳이다.
왜구들이 쳐들어오면 가덕도-녹산-김해분산으로 이어진 봉화가 여기를 거쳐 밀양으로 건너간 곳이다.

대통령께서 사자바위에 올라서면 봉화산은 140m에 불과하지만
24만평의 봉화들판과 마을, 멀리 화포 천 까지 한눈에 들어온다고 직접 보여 주며 ‘낮지만 높은 산’이라 설명하였던 곳이다.

 

 

봉화산 꼭대기의 호미든 관음성상만 생각하면서 숲길을 걷다간 깜짝 놀라는 수가 있다.
오르는 길 오른 쪽에서 불쑥 땅을 열고 솟아오른 부처상을 볼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런저런 절집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그런 부처상이 아니다. 법화경 15품 종지용출품이다.

법화경 15품 종지용출품, 법화경에 보면 다음과 같은 이야기가 나온다.
다른 국토에서 온 보살들이 석가모니 부처님께, 부처님 멸도후에 사바세계에서 법화경을 설하겠다고 말씀드리자,
부처님께서는 그럴 필요가 없다고 하셨다.

그 말씀이 끝남과 동시에 지하 허공 세계에서 수많은 보살들이 솟아올라왔다.

 

1959년 불교학도 31명이 뜻을 모아 심신, 사회, 경제, 사상 등 4대 개발을 상징하는 의미로 호미를 손에 든 관음성상을 이 자리에 세웠다고 한다.
산중에 점잖케 앉아계신 부처님이 아니라 호미를 들고 밭에 나가 중생들과 함께 허리 굽혀 일하며 세상을 구제는 관음보살을 모시기로 한 것이다.

원래의 관음성상은 인조석으로 세운 성상이어서 40여 년의 세월은 풍화작용으로 이 관음상을 마멸시켰고,
다시 이 자리에 새로 만들어 세우고자 발원했는데 추진자의 꿈에 관음보살이 나타나
나는 원래 그 자리에 그대로 두라고 당부하여 그 터에 성황당 돌탑을 올리고 비석을 세웠다는 것이다.

 

 

 

봉화산(烽火山)은 경상남도 김해시 진영읍에 있는 산이다.
해발 140M이며 그 뒷편에는 진영읍 본산리 일대와 봉하마을이 자리하고 있다.

높이는 겨우 140m 낮은 산이지만 주변의 아름다운 풍광을 조명해주며
산자리에는 마애불상, 사자바위, 부엉이바위, 호미든 관음상, 봉수대, 사찰 정토원 등이 자리잡고 있다.

 

 

이제는 '대통령의 길'을 따라 간다.

 

대통령의 길은 봉화산 소나무 숲길을 따라 난 산길을 따라 참 편안하게 이어진다. 예전 대통령이 사색하며 걷던 길이다.
숲길의 주된 나무는 소나무, 참나무지만 제 2코스 편백나무 숲길도 있다.
특이하게 약500km의 편백나무 오솔길이 화포 천으로 내려가는 산자락에 조성되어있다.

화포천은 국토해양부가 ‘한국의 아름다운 100대 하천’ 으로 선정된 21.2km에 이르는 국내 최대 하천 형 습지다.
다양한 물고기와 꽃창포, 산버들 같은 습지 식물들이 사는 형태의 보고다.

 

 

대통령의 길을 걷다가 '장군'을 만났다.

 

짐작컨데 장군이는 4월달에 개최될 청도 소싸움을 위해 맹훈련을 하고 있는가 싶다.
청도군은 올해 9월 국내 유일의 상설 소싸움장 개장을 앞두고
이달 25일부터 29일까지 5일간 개최하기로 한 청도 소싸움축제가 구제역 여파로 4월로 연기한다고 했다.

청도소싸움축제는 다른 지역의 소싸움과 달리 전국소싸움대회 8강 이상 성적을 거둔 싸움소 130여두를 초청해
6체급별로 나눠 최강싸움소를 가리는 소싸움경기로 매년 관중을 매료시켜왔다.
물론 해마다 소싸움축제에서 사진을 찍어왔고, 올해도 청도소싸움이 시작되면 사진을 찍으러 갈 예정이다.

 

 

장군이가 올라온 길을 따라 내려가면

낚시터 옆길을 지나가고

 

 

본산배수장이 나온다.
배수장 앞길을 따라 말탄 사나이가 멋지게 등장한다. 오늘은 소끄는 총각과 말탄 사나이를 다 본다.
자광사 앞을 지나오면 봉하 들판과 멀리 생태연못이 보인다.
 

 

대통령 추모의 집앞에 도착하여... 오늘의 '대통령의 길' 일정은 멋지고 재미있게 걸었다.

 

 

전체거리 6km 정도의 '대통령의 길'을 마치니 오후4시가 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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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 :
문마담/한창훈
제목 :
'대통령의 길'을 걷다.
조회 수 :
5593
추천 수 :
6 / 0
등록일 :
2011.03.14.21:22:08

profile
2011.03.14
21:51:15
멋진 출사기 처음부터 끝까지 잘 보았습니다. 특히, [승효상 '노무현의 무덤' 中] 글이 가슴에 와닿습니다. 그런 글을 소개해 주셔서 감사드립니다.
profile
2011.03.15
15:07:24
멋집니다.
profile
2011.03.15
22:33:08
봉하 마을 다녀 오셨군요 ^*^^
profile
2011.03.17
22:59:15
로그인 않고 첫화면에서 바로 들어와서 쭈~~~욱 출사기를 읽다가
어느분이 작성하셨나 궁금했지만 끝까지 작성자를 보지 않고 읽었습니다.
중간에 아마도 문마담님께서 쓰셨지 싶었는데 정말 맞았네요.
등산길에, 여행길에, 산책길에 느끼는 글과 사진들 늘 잘 감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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