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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미꽃 대신에 공작보살을 보고, 홍매화를 담다.


할미꽃 대신에 공작보살을 보고, 홍매화를 담다. 그리고, 통도사를 공부하다.

 

점심먹고, 뭘 할까... 하다가, 할미꽃을 담으러 통도사 서운암으로 갔다.
이젠 통도사가 쉽게가는 절집이 아니다. 왕복 100키로의 기름값과 도로비 4천원 그리고 통도사 들어가는 입장료와 주차비 5천원, 하면 고급 놀음이 된다.
범어사를 간다면 지하철타고 가서 버스타고 오르던지 걸어서 올라도 좋고, 또 운동삼아 산성으로 오르더라도 북문을 통한 이런 저런 방향으로 연구가 생기면서 "김밥 두줄에 생수 한병"이면 어떤 재미라도 엮어낼 수가 있다.

 

 

여하튼 오늘은 고급놀음으로 통도사 서운암의 할미꽃과 본절의 홍매화가 목적이다.
작년 이 때쯤에 서운암에서 할미꽃을 찍었는데, 오늘은 없다. 군락지 형편으로 보아 보름은 있어야 할까 싶다. 입구부터 장경각 짓는 곳을 돌아서 빙둘러 크게 한바퀴를 돌았는데도 어떤 꽃도 보지 못했다.

 

삼천불전 옆으로 내려오는데, 올라갈 때는 보지 못했는데 희안한 보살이 찻집을 기웃거린다.
이건 뭐, '공작보살'도 아니고... 여하튼 공작이 서운암 뜰을 활개치고 다닌다. 음... 명색이 공작인데, 활~짝 하는 폼을 잡겠지 하고 한참을 서 있었는데, 우아한 자태는 볼 수 없었다.

 

서운암은 1346년(고려 충목왕 2) 충현대사(沖絢大師)가 창건하였으며, 1859년(철종 10) 남봉대사(南逢大師)가 중건하였다.
근래에는 성파(性坡) 스님이 다시 중건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
'성파 큰스님', 삼천불상을 20년 동안 직접 도자로 구워 법당 3면에 둘러앉힌 분이다.
“흙일 때는 이게 중생이라. 용광로에 들어갔다 나오면 부처지. 그때는 물에 넣어도 풀어지지 않고. 말라도 먼지가 돼서 날아가지도 않지. 오물이 묻었어도 씻으면 본래 모습으로 돌아오지 않는가. 부처가 되면 부증불감(不增不減) 불생불멸(不生不滅)이라”
‘토불은 물을 지나지 못하고(土佛不渡水), 금불은 불을 지나지 못한다(金佛不渡火)’

 

오솔길 언덕배기에 위풍당당하게 길 가운데 우뚝 서있는 소나무 두그루의 모습은 서운암의 랜드마크이다. 언덕을 더 오르면 대형 불사를 조성 중인데 이곳에서 보면 언덕 소나무의 가치가 더욱 빛을 발한다.
이 대형 불사는 다름 아닌 팔만대장경 도자경판을 보관하기 위한 장경각 불사이다. 경전은 필사경과 목판경이 유명하고 많지 않지만 석경이 있다. 목판경으로는 해인사 팔만대장경이 대표격. 석경으로는 중국의 방산석경을 세계 제일로 친다.
이 두 가지에 이어 경전의 역사를 다시 쓴 것이 도자기로 구운 경전 ‘도경(陶經)’이다.
이것이 이 곳 서운암에서 성파스님에 의해 만들어졌으며 세계사에 유례가 없는 일이라는 것을 아는 사람은 의외로 많지 않다.
도자기경전은 팔만대장경 원본을 실크스크린으로 떠서 세라믹으로 구워낸 것인데, 그 공정이 만만찮았다. 대장경의 앞뒷면을 다 뜬 것이니 모두 16만484장. 가로 50cm, 세로 26cm, 두께 2cm에 가까운 판형을 고열로 구워내려면 여간해서는 성공하기 어렵다.
무문관 10년과 다를 바 없는 정진이라 할 수 있다.

 

一木在山田
根深枝亦全
實實數無盡
能衆喫味眞
“한 그루 과목이 산밭에 있으니/ 뿌리는 깊고 가지 또한 온전하다/ 주렁주렁 그 수량을 헤아릴 수 없다/ 많은 대중이 그 진미를 가히 맛볼 수 있다”

 

 

사찰이란 용어는 비구와 비구니 그리고 남자 신도인 우바새와 여자 신도인 우바이 등 사부대중이 모여 사는 곳이라는 뜻을 가진 '상가람마'라는 말에서 비롯되는데, 이 말은 중국에서 '승가람마'로 한역되었고, 이것이 축약되어 '가람'이라는 용어가 만들어지게 되었다.
이 같은 어원을 가진 사찰은 원래 불교가 일어나던 초기에는 존재하지 않았으며, 인도 왕사성의 죽림정사로부터 본격적으로 사찰의 역사가 시작되었다.

 

 

자장암은 자장율사가 통도사를 창건(신라 선덕여왕 15년(서기 646년))하기에 앞서 수도하던 곳이라니, 절골의 발원지며 통도사의 모태인 셈이다.
고개를 넘고 개울을 건너 찾은 자장암은 조용하고 아름답다. 전설이 아름답고 주변 산세가 그림처럼 아름답다. 담장 너머로 보이는 기와지붕과 기암, 그리고 가지를 늘어뜨린 낙락장송이 어우러져 한 폭의 수묵화를 연상케 한다.

 

자장암 일주문, 계단으로 올라서니 '자장암'이란 편액이 걸려있다.

 

 

일주문안으로 들어서면서 오른쪽, 담장과 나란히 세워진 전각이 관음전이다. 관음전 뒤쪽은 바로 기암괴석에 낙락장송이 어우러져 있다. 정면 4간의 관음전의 왼쪽 지붕은 팔작지붕이고 오른쪽은 맞배지붕 형식이다.
우측에 있는 커다란 바위, 즉 마애불에 맞추어 전각을 짓다보니 양단의 건축방식을 달리 한 것이라고 한다. 특이한 것은 관음전 중간쯤에 걸쳐있는 칼바위이다. 웬만하면 터 다듬으며 깨버렸을 법도 한데 그렇지 않고 바닥 돌을 그대로 살려 법당을 지었다. 칼바위란 법당 밖에 있는 바위가 문지방을 지나 법당 바닥에도 예리하게 솟아있는 바위이다.

 

마애삼존불, 관음전 우측으로 바위부처님인 마애불이 있다. 자연바위를 '冂'자로 다듬고, 앞쪽을 조금 더 벌려 세운 병풍 같은 바위삼면에 마애불이 암각되어 있다. 정면이 되는 중앙부에는 아미타불 좌상이 있고, 좌우 각각 대세지보살과 관세음보살이 협시하고 있다.

중앙의 아미타부처님은 가슴까지 오른손을 추켜올려 엄지손가락과 검지를 맞댄 중품상생의 수인을 하였고, 하단전 부위에 얹은 왼손은 엄지손가락과 약지를 맞대 중품하생의 수인을 하였다.
별다른 문양이 없는 두광에는 군데군데 진언 중의 진언이라는 '옴'자가 범어로 음각되어 있다. 어깨부터 흘러내린 가사의 곡선미와 장삼자락의 펄럭임이 아주 사실적으로 조각되어 있다.

 

통도사가 창건되기 전, 영취산에 들어와 이곳 석벽 아래 움집을 짓고 수도하던 자장율사는 그날도 공양미를 씻으러 석간수가 흘러나오는 암벽아래 옹달샘엘 갔다. 바가지로 물을 뜨려던 스님은 샘 안에 있는 개구리를 발견하고 개구리 한 쌍을 건져 근처 숲 속으로 옮겨 놓았다. 다음날 샘엘 가니 그 두 마리 개구리가 다시 그곳에 와 있기에 이번에는 좀 더 멀리 가져다 놓았다. 그런데 이게 어찌된 일인지 다음날에도 우물에는 그 개구리들은 또 와 있었다.

율사는 범상치 않은 개구리라 생각되어 자세히 들여다보니 여느 개구리와는 달리 입과 눈가에 금줄이 선명했고 등에는 거북 모양의 무늬가 있었다. 이에 자장율사는 불연(佛緣)이 있는 개구리임을 알고 더 이상 어쩌지 않고 그대로 두었다. 시간이 지나 어느덧 엄동설한이 다가왔음에도 개구리들은 겨울잠을 자지 않고 늘 샘물 속에서만 놀고 있었다. 이러다가는 자칫 얼어 죽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한 율사는 이들이 살 곳을 마련해 주기로 하였다.
율사는 절 뒤에 있는 암벽에 구멍을 뚫고 그 안에 개구리를 넣어 주며 "언제까지나 죽지 말고 영원토록 이곳에 살면서 자장암을 지켜다오"하며 수기를 하였다. 그리고 이 개구리를 '금와(金蛙)'라고 불렀다

 

비로암 역사에 대해서는 각각 다른 몇 가지 기록을 볼 수 있다. 고 한다.

통도사 홈페이지: 고려 충목왕 원년(서기1345년) 영숙대사에 의해 창건되었다고 통도사 약지에 기록하고 있다. 그후의 중건은 선조11년(서기1578년) 숙관당 태흠대사에 의하여 중건되었고 그 와의 중수에 대해서는 알 수 없다.
비로암 안내판 : 고려 충목왕 1년(1345년) 영숙스님 창건, 조선 선조11년(1592년) 덕장 스님 중수
통도사 사적비(1967년) 기록 : 충목왕 원년(1345) 영숙(靈淑)스님에 의하여 처음 지어졌다. 그 후 조선 선조 11년(1578) 이관(爾觀) 태흠대사(太欽大師)에 의하여 고쳐지어졌고 1940년 포광(包光)스님이 다시 지었다.
2004년 불보신문기사 : 비로암 중창 상량문에 의하면 최초 창건이 1702년(숙종 28)에 이루어 졌으며, 이어 1720년에 이건, 1791년에 삼창된 것으로 기록되어 있다.1941년 중창 당시의 기록을 살펴보면 당시 비로암에는 중이 417명이 있었다고 상량문에 적고 있으며, 울산 삼남의 조일사람이었던 김성문과 양산 신평 사람 최익조 두 사람이 목수 일을 한 것으로 되어 있다
등불 2007년 5월호 : 비로암은 고려 충목왕 1년(1345년) 영숙대사에 의하여 창건되었다. 그후 조선 11년(1578년)에 숙관(肅寬) 태흠(太欽)대사가 중창했다. 이어 1592년(선조25년) 임진왜란 때 불에 탄 것을 연파(蓮波)덕장(德藏)스님이 삼창했고, 이어 회봉(檜峰)지오(志五)스님이 중수하여 질곡의 세월을 유전하면서 중수를 거듭하다가 1904년 비로암 구품탱, 북극전 칠성탱, 신신탱, 독성탱, 조왕탱을 조성 봉안했음을 알수가 있는데 이로보아 기록으로 남아 있지는 않지만 1904년 비로암에 큰 불사가 이루어졌음을 짐작케한다. 최근들어서는 2002년에 원명 지종스님이 4년에 걸친 불사를 일으켜 요사채를 비롯한 노후한 전각을 인신중창하고 개금 단청불사도 마쳐 오늘에 이르고 있다.

 

극람암에서 북쪽으로 약 500m지점에 비로암이 있으니 고려 충목왕 원년(서기 1345) 영숙대사에 의하여 창건되었다고 통도사 약지에는 기록하고 있다. 그 후 중건은 선조 11년(서기 1578) 숙관당 태흥대사에 의하여 중건되었고 그 외의 중건 중수에 대하여는 알 수가 없다.
암자에서 서북쪽 약 500m되는 지점에 통도사 팔경중의 하나인 비로폭포가 있으며 뒷산의 우거진 송림은 산내에서 가장 울창하다.

 

비로암(毘盧庵)의 여시문(如是門), 벽면에 사천왕상이 그려져 있다. 일주문과 천왕문의 역할을 함께 하고 있는 것이다.
현판은 경봉스님의 글씨.

 

여시아문 [如是我聞] : 불교경전 첫머리에 붙이는 말.
여시는 ‘이와 같이’, 아문은 ‘내가 들었다’의 뜻으로 들은 교법을 그대로 믿고 따라 기록한다는 의미이다.
모든 불교경전에는 첫머리에 ‘여시아문일시불재(如是我聞一時佛在) …’라는 글귀가 나오는데 경전의 내용은 불타가 어느어느 장소에서 설교한 것으로 내가 확실히 들었으니 의심하지 말 것을 권유하는 뜻에서 써 놓았다. 이는 불타가 죽으면서 제자들에게 불경의 첫머리에 두도록 한 데 따른 것이다.

 

《불지론》에는‘여시아문은 자기가 들은 것을 모두 나타낸 것이며 불교를 전하는 자의 말이다. 여시한 일을 나는 옛날에 일찍이 여시하게 들었다’라고 했다.
《대지도론(大智度論)》에는 ‘모든 불경에 어떤 근거로 첫머리에 여시란 말을 사용했는가’라는 물음에, ‘불법의 대해(大海)는 믿어야 들어갈 수 있고 지혜가 있어야 능히 제도(濟度)한다. 여시란 곧 이 믿음이란 뜻이다’라고 하였다.

 

 

 

 

통도사 매화는 좀 더 있어야 만개를 할 것 같다. 하지만 벌써 마음급한 사진사들이 매화촬영에 여념이 없다.

 

 

정방형의 법당 바깥쪽 4면에는 각각 다른 이름의 편액이 걸려 있다.
동쪽에는 대웅전(大雄殿), 서쪽에는 대방광전(大方廣殿),
남쪽에는 금강계단(金剛戒壇), 북쪽에는 적멸보궁(寂滅寶宮)이라 되어 있다.

 

양산 통도사 대웅전 및 금강계단(梁山 通度寺 大雄殿 및 金剛戒壇)은 국보 제290호이다.
통도사는 해인사, 송광사와 함께 삼보사찰로 꼽히는 큰 절로, 신라 선덕여왕 15년(646)에 자장율사가 세웠다.
대웅전은 원래 석가모니를 모시는 법당을 가리키지만, 금강계단에 진짜 부처인 진신사리가 안치되어 있으므로 대웅전에는 부처의 모형인 불상을 만들지 않았다. 그 때문에 통도사라는 절 이름도 금강계단을 통하여 도를 얻는다는 의미와 진리를 깨달아 중생을 극락으로 이끈다는 의미에서 통도(通度)라고 하였다 한다.

 

금강계단은 금강과 같이 단단하고 보배로운 규범이란 뜻이다.
부처님이 항상 그곳에 있다는 상징성을 띠고 있으며, 지금 있는 금강계단은 고려·조선시대를 거쳐 여러 차례 수리한 것이다. 양식은 우리나라의 전통적인 금강계단 형태를 띠고 있는데, 가운데에 종 모양의 석조물을 설치하여 사리를 보관하고 있다. 1층 기단 안쪽 면에는 천인상을 조각하고 바깥쪽 면은 불법을 지키는 수호신인 제석의 모습을 조각하였다.

 

또 영취산의 기운(氣運)이 서역국 오인도(西域國五印度)의 땅과 통(通)한다고 하여 통도사라 불렀다고도 한다. 자장은 이 절에서 금강계단(金剛戒壇)을 쌓고 보름마다 불법을 설(說)하여 계율종(戒律宗)의 근본 도량(道場)이 되었다.

 

그 후 임진왜란 때 불탄 것을 1603년(선조 36)에 송운대사(松雲大師)가 재건하고 다시 1641년(인조 19) 우운(友雲)이 중건하였다.

 

통도사, 구성가람(伽藍) 배치는 동서로 향하고 있는데, 해탈문(解脫門)과 천왕문(天王門)을 지나, 오른편에 극락전(極樂殿)·약사전(藥師殿)·성화각(星華閣)·용화전(龍華殿)·관음전(觀音殿)·장경각(藏經閣) 등이 있고, 왼편에 범종각(梵鐘閣)·만세루(晩歲樓)·원통방(圓通房)·감로당(甘露堂)·명부전(冥府殿)·응진전(應眞殿) 등이 배치되어 있다.
다시 중앙의 불이문(不二門)을 지나면 본당인 대웅전에 이른다. 이는 남면으로 배치된 정면 3칸, 측면 5칸의 단층 건물이며, 지붕의 종마루가 우물 정(井)자형을 이룬 독특한 양식의 건물이다.

 

설화 / 대웅전 옆의 연못은 구룡지(九龍池)로 불리며, 통도사 창건에 얽힌 이야기가 남아 있다.
자장이 당나라에서 수행할 때 문수보살이 진신사리와 가사를 주면서 신라 영축산의 독룡 아홉 마리가 살고 있는 연못을 메워 금강계단을 세우고 봉안하라고 알려주었다. 자장이 여덟 마리의 용은 쫓아 보냈으나, 마지막 남은 용이 연못에 남아 터를 지키고 싶어하여 연못 일부를 메우지 않고 남겨둔 것이 지금의 구룡지라는 전설이다.

 

석가모니 부처님의 진신사리를 봉안한 전각을 적멸보궁이라 한다. 우리나라에는 신라의 자장율사가 당나라에서 가져온 부처님 사리와 정골을 나눠서 봉안한 5대 적멸보궁이 있다.
양산 통도사, 강원도 오대산 중대에 있는 상원사 보궁, 설악산 봉정암, 태백산 정암사, 사자산 법흥사 적멸보궁이 바로 성지로 꼽히는 5대 보궁이다. 적멸보궁에는 따로 불상을 모실 필요가 없다.

 

보궁은 석가모니 부처님이 <화엄경>을 설한 중인도 마가다국 가야성의 남쪽 보리수 아래 금강좌에서 비롯됐다. 그 후 보궁은 불사리(佛舍利)를 봉안함으로써 부처님이 항상 그곳에서 적멸의 법을 법계에 설하고 있음을 상징하게 됐다. 그래서 적멸보궁에는 불상을 안치하지 않는다. 대신 보궁의 바깥쪽에 사리탑을 세우거나 계단(戒壇)을 만들기도 한다.

통도사는 대형 금강계단에 부처님 진신사리를 안치해 계율근본도량불보종찰이 됐다. 금강계단을 받들어 기도하고 예불을 올리는 대웅전(보물 144호)에는 전면에 '적멸보궁'이라고 쓴 편액이 걸려 있다. 불법승의 삼보중 불보종찰이다.

오대산 중대의 적멸보궁은 자장율사가 '문수진성의 주처'라는 생각에서 부처님 사리를 모신 성지로, 4방불 신앙의 중심인 비로자나 법신불로 상징되고 있다. 이 보궁의 불사리는 어디에 안치됐는지 아무도 모른다. 다만 보궁 뒤에 1m 높이의 판석에 석탑을 모각한 마애불탑이 상징적으로 서 있을 뿐이다.

설악산 봉정암은 해발 1224m의 고지대에 있는 적멸보궁이다. 이 절 역시 자장율사가 창건하고 5층 석탑에 불사리를 안치했다.

 

강원도 정선의 정암사도 통도사처럼 법당에 불상을 두지 않은 보궁이다. 자장율사가 꿈에 문수보살의 가르침을 받아 지었는데 보궁과 함께 수마노탑(보물 410)이 천의봉 중턱에 서 있다. 보궁 뒤에는 진신사리가 안치된 보탑이 서 있고 그 옆에 자장율사가 도를 닦았다는 토굴이 있다.

또 하루 해가 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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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 :
문마담/한창훈
제목 :
할미꽃 대신에 공작보살을 보고, 홍매화를 담다.
조회 수 :
7034
추천 수 :
6 / 0
등록일 :
2011.03.11.10:47: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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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03.11
11:04:43
이야~ 고생하신 작품, 한참을 바라 봅니다. 찬사를 보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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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03.11
18:03:39
참으로~ 정성어린 작품, 한참을 바라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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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03.12
11:55:41
소중한 작품, 정성어린 작품, 감동의 도가니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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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03.14
11:30:01
여행과 겸한 출사기 정말 공부할것도 많습니다.
늘 그 앵글속만 쳐다본다고 주위 한 번 둘러볼 생각조차 못하고
시간에 쫒겨와버리고...... 많은 것을 느끼게 하는 출사기 정말 감동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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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03.23
13:00:14
저는 그냥 지나 친 장소 곳곳이 작품이 되어 있네요.
초보의 눈으로는 볼 수 없었던 포인트를 많이 알았습니다.
좋은 글과 사진 잘 봤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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