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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수 142

순천만 기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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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디선가 그런 글을 보았다. 지독히 외롭거든 순천만으로 가라고.

순천만에 가면, 나의 외로움 보다 더 오래된 외로움이 홍어처럼 싹혀져 있어서,  내가 가진 외로움은 참을 수 없이 가벼울 것이라고 했다.

외로움을 털어버리는 방법 가운데 하나가, 내가 가진 놈보다 더 외로운 놈을 보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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긴 시간을 내려가서 처음 만난 순천만은 보라빛 새벽빛에 묻혀서 잠을 깨지 않았다.

본래 외로움이란 소란스럽지 않은 것. 조용한 수면에서 긴장을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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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확실히 순천만에는 외로운 것이 많다.

간밤에 털어바린 외로움이 수면 위에서 안개로 피어나고., 미쳐 떨쳐 버리지 못한 사랑, 이별, 실망, 회환 따위들은 슾지 아래에 묻혀 있다/

저렇게 슾지가 발정한 동물의 음부 마냥 부풀어 있는 것은 그러한 외로움이 많다는 것이다. 나는 그렇게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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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더러 잊혀진 것들은 바닥의 뻘에 묻혀서 오랜 잠을 준비하고, 그래도 기억되어야 할 것들은 수면위에서 잠시 일렁인다.

누군가를 애타게 그리워했다면, 순천만에는 가지 말 일이다. 그곳의 뻘은 그리움 조차 빨아들일테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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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길이 잠시 뒤로 물러나면 배도 바람도 새들도 잠시 쉰다.  숲에서 물가로 이어진 발자국은 간밤에 머리 풀어 헤치고 몸을 잠근, 그 여자인지. 아니면 늦은 밤에 뻘에서 걸어 나온 인어의 발자국인지 모를 일이다. 때로는 그들 외로움도 어디론가 가야 할 일이 있지 않겠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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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와 짱뚱어는 잡지 못한다. 그들이 외로움을 먹어 치우는 골룸같은 존재이기에. 가끔은 외롭지도 가볍지도 않은 사람들이 그들을 잡기도 한다.

그래서 저렇게 꾸짖고 있다. 하지만, 새들이, 노랑부리 저어새나, 먹황새가 게나 장뚱어를 포획해도 벌금을 물릴까. 순천만 같이 외로움이 가득한 곳에서는 인간보다 뭇\짐승들이 더 특혜를 받을 때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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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래도 게는 두려워 한다. 나무 다리를 두들기며 어설픈 뒷걸음질. 밤 이슬에 눅눅해진 껍질을 말리려고 하는지. 아니면 저 게도 지독히 외로운 무게를 이기지 못해서 말려버리려고 하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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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칠면초는 뜨거운 볕 아래서 한가지 색으로만 수군거리고 있다. 오래된 페르시아 양탄자처럼 더러 낡은 모습이 지독히도 순천만을 아프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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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외로운 것은 외로운 것들끼리 뭉쳐 있고, 잊혀진 것들은 잊혀진 채로 열려 있다. 혼자라서 외로운 것이 아니고, 가끔 잊혀져서 외로운 것이다.

하지만, 절대반지를 찾는 집요함이 있어서 그런 비밀들을 간직하고 있다. 결국 외롭다는 것은 감추어 둘 비밀들이 많지 않을 때 발생하는 구름 같은 것은 아닐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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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순천만 뻘밭을 거닐 때는 지독히 인간적인 것을 고민해야 한다. 버리는 것이 더 어렵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순천만 한 가운데서 내 몸밖으로 버릴 곳은 오로지 저 한 곳 뿐이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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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리는 건너 가기 위해 만들었을까, 건너 오기 위해 만들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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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프루스트적인 삶이 아니라 할지라도 늘 길은 두 갈래다.  그러나 어쨋든 길은 한 쪽만 선택해야 한다. 미로가 아닐 터이지만, 뻔한 길에서도 잠시 망설일 때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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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순천만의 증명은 어렵지 않다. s자 물길을 보지 못한다해도 그것은 행복하다. 삶이 s자인데 굳이 휘어진 것을 확인하지 못한다해서 그리 애상할 일도 아니다.

순천만의 증명은 나보다 더 오래된 외로움의 히든 카드를 마법사의 소매부리 같은 곳에 무수히 숨겨 놓고는 시치미를 뗀다는 것이다. 그리고는 그 외로움도 당연하다는 듯이 당당하게 드러내고, 그래서 약간은 멋적게 만드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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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순천만 갈대 숲을 보거든, 오래 눈을 맞추지 말아야 한다. 너무 오래 보고 있으면, 외눈박이 시클롭스 같은 괴물이 나타나서 잡아챌 지 모른다.

투수의 동작을 훔치는 1루 주자처럼 그렇게 빠르게 훑어야 한다. 8월 땡볕에 손에 쥔 아이스크림 처럼 그렇게 빠르게 맛을 보아야 한다. 너무 오래 들여다 보면 잡힌다. 빠져나오기 위해 구조대를 찾을 때는 늦다. 그렇게 발목 잡힌 것들이 저렇게 뻘밭에 묶여서 뭉긋뭉긋 숲으로 되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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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순천만 갈대 밭에서 본 것은 지독한 외로움이나, 괴로움, 슬픔 같은 것에도 저항하지 말고 순응하라는 것이다.

 거센 바람, 별빛도 등대불도 보이지 않는 곳, 나침반은 고장 나고, 돛도 닻도 부러진 배, 농무 속에서 길은 없다. 하지만 길이 보이지 않을 뿐 사라진 것은 아니다. 몸부림 치면 칠수록 암초에 부딪쳐 좌초하기 쉽고 더 빨리 가라 앉는다. 기다리면 길이 열릴 것이다.

저항보다는 순응이 더 지혜로울 수 있다는 것을 바람에 쓸려 가로 누운 순천만 갈대들이 비전해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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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천만에는 외로움을 털어내기 위한 일격 필살의 비기를 가르쳐 주지는 않는다. 하지만, 떨쳐 낼 수 없는 것은 오히려 훈장처럼 달고 다니면 결국에는 빛이 바래서 아무런 흔적도 남기지 않을 것이라고 했다.

그럴지도 모른다. 내가 남겨 놓은 그림자도, 언젠가는 순천만 갈대들이 색을 말려 버리고 무채색으로 흔들리며 가벼워 질 때, 엷은 보라색으로 같이 어울리지 않을까.

그때 다시 순천만으로 가서, 내가 남겨 놓은 외로움을 꺼내 봐야 겠다. 조금은 쪽 팔릴 수도 있으리라. 하지만 뭐 어떤가. 늘 빵빠레만 울리며 살 수는 없지 않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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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on't shoot me.

I am just a common photographer.

I am HOMO LIBERTAS.

 





http://hansphoto.net

이름 :
darkrain/한현우
제목 :
순천만 기행
조회 수 :
6875
추천 수 :
9 / 0
등록일 :
2010.09.04.07:42:14

profile
2010.09.04
12:31:27
참으로~ 아름다운 여행을 하셨네요. 즐겁게 감상 합니다.
profile
2010.09.05
08:46:31
오~! 고생하신 작품, 느낌이 좋은작품, 즐겁게 감상 합니다. 찬사를 보냅니다.
profile
2010.09.06
11:38:48
고생하신 작품, 너무나 아름답습니다. 즐겁게 감상 합니다.
profile
2010.09.06
17:05:36
오~! 고생하신 작품, 즐겁게 감상 합니다.
profile
2010.09.10
12:03:39
워~
좋은 글과 함께 멋진 작품들 감상 잘하고 갑니다...
순천만... 들러야 할 곳 중 1곳인디...
남해고속도록 상습 정체 구간이라.. 제 정성이 부족한지 아직 들리지 못했습니다.. ^^
고생하신 작품과 글 잘 보고 갑니다....
profile
2010.09.10
12:25:41
참으로~ 소중한 작품, 너무나 아름답습니다.
profile
2010.09.18
13:26:10
~~아직 가보지못한 순천만~~
많이 생각하게하는 글``좋네요
감사합니다
noprofile
2010.12.01
19:01:45
참으로~ 생각하게 하는 작품, 멋집니다.
profile
2012.01.24
20:50:59
고생하신 작품, 참으로 아름답습니다. 멋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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