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막..

사막의 해와 달은 어떻게 뜨고 그리고 별은 얼마나 빛날까..?



또 무엇을 볼 수 있을까..?

사막의 맛과 냄새는 어떨까..?

사막에는 어떤 소리가 들리까..?

그리고 내 몸 속에 웅크린 나를 만날 수 있을까..?

사막에서 사는 것도 어렵겠지만 그 곳으로 가는 길도 참 어렵다.

일요일 아침 8시에 김포 공항에 도착해보니 부산 가는 에어부산 항공이 정비 지연으로 취소됐다.

첫 숟가락부터 돌멩이를 씹었다

다행이 다른 항공사 자리가 있어 김해 공항에서 단체 모임 출발 약속시간에 갈 수 있었다.

김해 공항에서 사진 동호회 16명이 인사 나눈 후에 북경 가는 남해 항공을 보니 지연 표시

가 뜬다.

두 번째 숟가락에서도 또 돌멩이가 나왔다

2시간을 맥 놓고 기다리기엔 김해 공항은 좁고 눅눅하고 더웠다

사막은 쉽게 갈 수 있는 곳이 아닌가 보다

북경에서 사막이 가까운 서녕으로 가려고 3번째 비행기를 타러 갔다

타고 갈 항공편이 지연으로 불이 들어왔다

많은 사람이 북적 이는 공항 바닥에 신문지 깔고 앉아 기약 없이 물만 마셨다

그리고 몇 시간 후에 항공편이 아주 취소되어 갈 비행기가 없단다.

북경엔 비바람이 거셌다

세 번의 항공기 지연과 취소로 귀중한 하루가 날아갔지만 사막 가기 전에 미리 단련을

시키는가 보다 생각하며 이것 또한 여행의 일부라고 스스로 맘을 다스려본다.

세 번째 숟가락에서는 아주 큰 돌멩이를 씹었다

사막엔 볼 것들이 아무것도 없다

처음엔 볼 것이 없는 사막이었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점점 더 눈이 크게 떠지고 마음의 눈이

열린다. 

가끔 바람에 휘날리는 모래안개가 둥근 모레언덕에서 피어오른다.

바람이 만든 모래언덕 라인이 여성의 몸매보다 더 곱고 사랑하는 사람의 눈동자보다 깊다

내 아이 기저귀 갈며 본 동글동글한 엉덩이가 모래 언덕이 되어 내 눈을 통해 머리를 거쳐

가슴으로 흘러든다.

그렇구나..!

사막은 내 사랑하는 사람들인 것을 어찌 두 눈으로만 보려 했는가.. .. ..!

가슴을 열어야지..!

사막엔 맡을 냄새가 없다

있다면..

모래의 마른 냄새와 하늘 구름의 젖은 냄새밖엔 없다

그런데..

어디선지 바람에 실려 물비린내가 내 옆을 지나간다.

멀리서 풍기는 미역 냄새 같기도 하고 오래된 비누 냄새 같기도 하고, 엄마 젖 냄새 같기도

하고..

냄새 따라 고개를 돌리니 초록에 둘러싸인 둥근 호수가 보이고 혹이 둘인 낙타가 서성인다.

그렇구나..!

사막엔 오아시스 냄새가 있다

낙타와 풀과 호수 물이 섞여 생전 맡아보지 못한 냄새가 내 코를 자극하고 다시 송곳처럼

뇌 속에 파고든다.

중요한 것을 기억하려 하듯 코를 벌려 한껏 폐 속 깊숙이 사막의 첫 향기를 담아 놓는다.

모래를 한 움큼 쥐니 살살 손가락 사이로 간지럽게 새나간다

힘껏 쥐니 모래 갈리는 소리를 내며 한 순간에 빠져나간다.

내 여인으로 만들고 싶어 힘껏 안았으나 한 순간에 빠져나간 모래 같은 여인의 기억이

떠오른다.

따끈한 모래에 앉으니 한 겨울 아랫목에 이불 깔고 앉은 느낌이 든다.

내 엉덩이 굴곡 사이로 모래가 자리를 잡아 내 몸무게를 골고루 분산시켜 몸이 가벼워진다.

내 사무실 의자보다 훨씬 편하다

누워본다

겨드랑이 사이로 파고든 모래가 간지럽다

..

사진기 렌즈를 사막 한 가운데로 겨냥한다.

포수가 총구를 겨누듯..

사막의 느낌을 사진에 잡고 싶다

어부가 큰 물고기를 잡고 싶듯..

사막의 향기와 모래의 촉감과 바람에 날리는 모래를 사진에 담고 싶다

엄마가 갓난애 젖병과 기저귀를 담듯..

낙타의 울음소리와 내 심장 뛰는 소리까지 사진에 표현하고 싶다

의사가 숨 거두는 환자의 심장 소리에 청진기를 대듯..

..

..

사막의 밤만이 진정한 밤이다

태고에 세상이 창조되고 암흑의 혼돈에서 벗어나 낮이 생기고 밤이 태어나고

6일 째 사람이 만들어진 후부터 오늘까지 사막의 밤은 변함이 없다

소리도 없고 냄새도 없고 오직 밤하늘에 빛나는 별빛이 바람에 흔들릴 뿐이다

사방을 둘러봐도 빛 한 줄기 없고 밤하늘에 별만이 존재한다.

낮에 본 모래 언덕과 오아시스도 낙타도 다 완전하게 없어졌다

흔적도 없고 머릿속에 남은 낮 풍경도 까만 밤하늘 속으로 빨려 나갔다

도시에 불빛 찬란한 밤은 낮의 연장이지만 사막의 밤은 낮과 다른 세상이다

나와 별만이 존재한다.

나와 신만이 존재한다.

사막의 밤하늘을 보니 한눈에 북두칠성이 보이고 다섯 거리에 밝은 북극성이 빛난다.

모세도 백성을 이끌고 40년 광야를 헤맬 때 저 북극성을 보며 방향을 찾았고

모세의 아내 십보라와 고달픈 광야 생활에서 저 북극성을 보며 위안을 받았으리..

고타마 시달타도 히말 동굴에서 6년 선을 행하며 밤에도 항상 깨어있어 저 북극성을

보았으리.……

낮에 떠나야 할 길을 가리키며 조용히 맥박 치는 별빛, 시간에서 벗어나고 사람의 역사에서

도 다른 땅 그리고 태어나지도 죽지도 않는 사막의 별빛에 눈을 고정시킨다. 

작은 별들이 모여 냇물을 이루고 이 쪽 하늘에서 저 쪽 하늘로 흐른다.

모래에 누워서 별들로 선을 그어 사자를 만들고 전갈을 만들며 언젠가 이 세상을 떠나 하늘

나라에 오르면 살고 싶은 내 별도 찾아본다.

내 부모님은 어느 별에 계실까..?

서로 다른 별에 계실까..?

나도 그 별에 가서 함께 살았으면..?

나 어릴 때 내 어머니가 평상에 누워 부채로 모기 쫓으며 엄마별 아빠별 그리고 내별을

가리켜 주셨는데..

죽으면 서로 다른 별이 되어 따로 사는 게 두려웠는데..

..

모래가 낙타의 발굽 사이로 새어 달아나며 내 발자국을 지웠다

사막에 들어서니 말을 잊었고 낮엔 햇빛을 온 몸에 가득 받았고 별이 총총한 밤에는 서늘한

별의 냉기를 받았다

사막을 걸을 때마다 발밑에서 모래 안개가 일고 건조한 바람에 입술은 갈라졌다

담배가 피고 싶다

어두운 밤하늘에 담배 연기를 확 뿜어 가슴에 담긴 것들을 저 밤하늘로 날리고 그리고

반짝이는 별처럼 단출하고 깨끗하게 살고 싶다

소유의 삶에서 무소유의 기쁨을 느끼며 살고 싶다

사막에선 부족한 것이 행복이듯이……

사막에 서서 아무도 기다리지 않으리. 또한 아무것도 생각지 않으리..

끝없이 물질에 목말라하는 욕망을 사막의 어둠에 묻어버리리..

마치 사막의 침묵처럼..

사막에서의 하루는 해뜨기 2시간 전인 4시부터 시작이다

사진가들은 일출이 큰 소재고 빛이 부드러운 이른 오전과 해지는 저녁을 제일 좋아한다.

사진하며 제일 괴로운 것이 일출과 일몰에 시간을 맞추는 것이다

허나 제일 즐거운 것도 뜨는 해와 지는 해를 사진에 담는 작업이다 

5개의 객실과 주인 사는 방 그리고 식당과 주방이  “ㅁ” 자 형으로 지어진 집이다

화장실은 집 밖에 떨어져 있고 샤워실은 있으나 물이 없다.

아마도 사방에서 모래 바람이 불어 그런 모양으로 집을 지었나 보다.

군용 철제 침대가 방벽 따라 5개가 있고 가운데 조그만 탁자가 있다

침대엔 오래된 시트가 있고 노란 모래가 한 움큼 누워있다

태양광으로 희미한 전등에 불이 켜졌다 꺼졌다를 반복하며 어둠을 밝힌다.

사막에도 서서히 문명이 기웃거린다.

큰 오아시스에 오직 한 집만 있으니 선택의 여지가 없고 어쩌다 오는 손님을 위해

단장할 필요를 못 느낄 것 같다

집 마당 구석에 펌프를 세게 누를 때 마다 삐걱거리며 시원한 물을 토해낸다

일행들이 차례를 기다리며 새벽어둠 속에서 양치와 펌프에 머리를 들이대고 세수를 한다.

한참 후에 나도 머리를 들이대고 얼굴에 물을 묻혔다.

주방에는 얼굴 까만 주인 남자와 키 작은 부인 그리고 7-8세 남자아이가 음식을 만든다.

사막인데도 시원한 물이 시원스레 나오는 펌프가 신기하고 생명처럼 귀하다

밖에 있는 화장실은 문 열기가 무서워 옆에서 소변을 본다.

노란 오줌이 힘없이 조금 나오다 만다.

대변을 못보고 참은 지 벌써 3일째인데 아랫배가 더부룩하나 화장실에 가기는 싫다

오늘 밤 모래에다 몰래 흔적을 남길 예정인데 잘 될지 의문이다.

어젯밤 모기에 물린 팔다리가 가렵다

방안이 한낮 열기에 후끈거려 밤하늘에 별이 또렷해질 때까지 밖에서 서성이다 모기에

물리고 자다 물리고 팔다리가 고생이다

더위 속에 몸이 지쳐서 모기가 팔에 앉았는데도 몇 번 쫓다 그냥 놔둔다.

한 밤에는 모기들의 잔치가 성대히 열린다.

빨리 잠들었으면 하는 생각뿐인데 방금 펌프로 등목한 잔등에 땀이 솟는다.

사막의 오아시스 물가에 낮은 나무들은 낮에 목마름을 참고 한 밤에 조용히 물 올리는 소리

를 내고……

그 나무 아래에서 한 여인이 산통의 고통으로 나무 가지를 움켜잡고 이를 악물고 출산을

하는 고통과 희열의 신음 소리를 낸다.

아무도 가르쳐주지도 않았고 아무도 도와주지 않았는데 오직 본능으로만 출산을 한다.

본능만이 숨 쉬는 사막의 밤이다

저 쪽에 쭈그리고 앉은 낙타의 후드득거리는 소리가 퍼진다.

그녀가 조용히 말한다.

어둡고 고요함이 마음을 열었나 보다

하나 둘 보따리를 풀러 펼쳐 놓는다.

어둠 속에 어렴풋 보인다. 아픔도 기쁨도 지나간 사랑도 희미하게 보인다.

오아시스 물 위로 별 빛이 아른거린다.

내 맘 속 그녀의 말이 다 맞는다고 별빛이 물위에서 흔들거린다.

그녀와 나는 한 몸이다

침묵의 사막, 모래 언덕의 바다 그리고 별빛이 흔들리는 호수에서 언어가 상실된다.

나지막이 노래를 불러본다

밤하늘에 노래가 퍼지고 모래 속으로 노래가 스며든다.

모래 속에서 노래를 들었는지 작은 움직임이 보인다.

딱정벌레인가..?  잠자다 깬 도마뱀인가..? 

사막의 밤은 이렇듯 생존의 소리로 가득 차고 잠들지 않는다.

나도 그들처럼 피곤하지만 빨리 잠을 못 이룬다.

너무 고요해서 너무 어두워서 별이 너무 빛나서 잠이 낯설어진 모양이다

사막의 밤은 이렇게 흐른다.

사막엔 길이 없다. 아니 사막 전체가 길이다.

우리네 인생길처럼 가면 길이 되고 만들면서 가는 길이다

최인호 작가의 소설 “길 없는 길” 에서 고요의 길을 걷고 대자유의 길을 만나는

경허 스님이 떠오른다.

낙타의 발자국도 바람에 말끔히 씻겨 내렸고 모든 자취를 지워 버렸다

하룻밤에 지형이 바뀌고 매일 마다 새로운 사막이 시작된다.

하늘이 너무 푸르러 얼굴이 시리고 매일 새롭고 아름다운 모래 언덕의 곡선을 본다.

사막처럼 매일 거듭 새롭게 태어나는 내 삶이 되었으면…….

길은 소통의 다른 언어이다

사막은 전부가 길이기에 주변의 바람과 모래와 소통하여 말이 필요 없고 답답함이 없다

신호등 대신 높은 모래 언덕이 방향을 알려주고 큰 언덕 아래엔 오아시스가 있다

사막용 지프차는 내리막에선 브레이크를 잡고 모래에 미끄러져 내려가며 중심을 잡고

오르막에선 낮은 곳에서부터 가속을 하며 오를수록 기어 변속을 낮추며 힘겹게 오른다.

오르다 힘이 떨어지면 뒤로 다시 미끄러지며 더 낮은 곳으로 내려간다.

그리고 다시 힘차게 오르며 타이밍을 맞춰 기어 변속을 한다.

6대의 지프차가 매일 한대씩 언덕을 못 넘어 사람들은 걸어 오르고 차는 죽었다

죽은 차의 3명이 5대에 나눠 타고 앞차를 따라 또 간다.

모래 언덕의 정점에서 내려오는 순간에는 차 앞이 안보이고 미끄러져 내려오니

가슴이 철렁철렁하다

롤러코스트의 높은 곳에서 떨어지는 느낌 보다 더 공포감이 든다.

롤러코스트는 일정 궤적으로 움직이지만 사막의 차는 매번 예측할 수 없는 내리막에

한 순간에 전복으로 사고를 당할 수 있기에 양 손에 쥐가 나도록 차 손잡이를 잡았다

엉덩이가 떴다 떨어지고 옆 사람과 머리 박고 앞좌석에 부딪쳐 정강이 멍들고..

그래도 참 재미있다

늙은 내 나이에도 이렇듯 재미있는데 젊은 내 아들이 탔으면 얼마나 재미있어했을까..?

아들에게 미안하다

돌아가면 아들에게 사막 차 이야기는 하지 말아야겠다.

비오면 여기서 살고 봄과 가을엔 저기서 살려고 생각했는데…….

사막의 밤하늘을 보며 내가 죽어서 갈 내 별을 찾았으니 부질없는 세상 집과 재물 걱정은

하지 말아야겠다.

사막의 별빛이 머릿속에서 희미해질 무렵이면 또 배낭을 싸야겠다.

2년 전 인도 여행은 사람과 만남이고 작년 아프리카 탄자니아 여행은 자연과의 만남이라면

이번 바단지린 사막 여행은 나와의 만남이었다.        2011/7/31